엄마가 입시를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
강연장에서 엄마들의 얼굴을 보면, 비슷한 표정 하나가 스쳐 갑니다.
두 시간 내내 펜을 놓지 않고,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입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날 무렵이 되면 그 얼굴에 다른 결이 섞입니다. 필기하던 손이 조금 빨라지고, 눈은 다음 장을 미리 쫓습니다. 어딘가 조급해지는 얼굴입니다. 저는 이제 그 표정 안에 어떤 문장들이 지나가는지 압니다.
'오늘 들은 걸 어떻게 다 기억하지.'
'집에 가서 뭐부터 챙기지.'
'저 앞자리 엄마는 벌써 다 아는 것 같은데.'
그러다 결국, 마음속 가장 아래에 이런 문장 하나가 가라앉습니다.
"내가 정보를 많이 못 줘서, 내가 부족해서, 우리 아이가 손해 보면 어쩌지."
학생부 종합전형은 부모 전형이라는 말, 고등학교 수행평가는 사실상 엄마 숙제라는 말. 이런 말들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정보를 하나라도 더 붙잡으려 애를 씁니다. 강연을 듣고 나가서는 또 다른 설명회를 검색하고, 밤늦게 아이를 재우고 나면 유튜브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켭니다. 다 봐야 할 것 같고, 저장만 해둬도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보가 쌓일수록 안심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봐야 할 목록만 길어집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정보들의 끝에 늘 '내 탓'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아직 못 챙긴 나의 목록도 같이 늘어나는 겁니다.
제가 정보를 드리는 이유는,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표면에 떠다니는 그 정보들은 사실 아무도 다 쫓아갈 수 없습니다. 스무 해를 이 일만 해온 저도 다 못 합니다.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서 새 영상이 올라와 "요즘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할 테고, 내일이면 또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밀어낼 테니까요.
서울대를 졸업하고 20년을 입시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그동안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가 최악이다, 우리 때가 제일 힘들다." 웬만하면 저는 그 말을 조금 걸러 듣습니다. 어느 해나 힘들다고들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저도 걸러내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뀌는 건, 제 기억에도 거의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유난히 혼란스러운 게 맞습니다. 어머님 탓이 아닙니다.
지금 혼란스러운 건 어머님이 정보를 못 따라가서가 아닙니다. 제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다 똑같이 어렵습니다. 심지어 학생을 뽑는 대학조차, 이 상황에서 어떤 아이를 뽑아야 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판을 짜는 쪽도 헷갈리는데, 그 판 위에 선 어머님이 훤히 아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려는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제도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그 안에서 대학은 어떤 아이를 찾는지, 그래서 우리 아이는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 이 큰 흐름 하나를 손에 딱 쥐고 계시면, 앞으로 어떤 정보가 새로 나와도,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 이건 이런 흐름에서 나온 얘기구나" 하고 스스로 제자리에 놓아볼 수 있게 되니까요. 목록을 늘리는 대신, 걸러낼 눈이 생기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내가 부족해서 우리 아이를 못 도와준다"는 그 자책을 조용히 내려놓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그 자책을 멈춰드리려고 정보를 드리는 겁니다.
자책을 멈춰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게 아이에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자책은 나 혼자 조용히 삼키고 끝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것 같다는 마음, 내가 더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 이 무거운 에너지는 신기하게도 고스란히 아이에게 건너갑니다. "엄마가 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 이런 말이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지가 않습니다. 아이는 말보다 공기를 먼저 읽으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표정, 한숨의 길이, 채점하는 손의 온도로 그 무게를 먼저 느낍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얹은 채로, 아이의 공부 정서는 서서히 나빠집니다. 집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이상하게도 아이는 점점 덜 하게 됩니다.
도우려던 마음이, 정확히 반대의 결과를 데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순서를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당장 내 마음 편하자고 자책을 내려놓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엄마의 자책은 결국 아이의 공부에까지 해를 끼치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내려놓으셔야 하는 겁니다. 나를 위해서이기 전에 아이를 위해서, 그 무게를 내려놓는 편이 낫습니다.
예전에 외대부고, 전국에서 최상위권 아이들이 모이는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가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조차, 부모가 부담을 주고 악착같이 뒤를 따라다니며 공부시킨 집이 끝이 좋은 경우를 거의 못 봤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국은 아이가 제 힘으로 해낼 수 있어야 이 긴 입시를 온전히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려면 부모는 뒤에서 미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제 삶을 찾아가도록 묵묵히 믿고 곁을 지키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믿고 기다리라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손을 놓으라는 말로 들으시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거꾸로입니다. 묵묵히 기다리기 위해서야말로 입시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느 길목에서는 최소한의 개입을 해야 하고, 어느 지점은 아이를 믿고 그냥 기다려도 괜찮은지. 그 눈금을 가늠하려면 결국 '기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준 없이 하는 기다림은 방치가 되고, 기준 없이 하는 개입은 간섭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음만으로 하는 기다림은, 사실 가장 불안한 기다림입니다.
그 기준을, 앞으로 이 학교에서 저와 함께 하나씩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혼자 검색으로 쌓는 정보 말고,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대입할지까지 같이 궁리하는 기준을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자리는 원래 제일 어렵습니다. 아이가 힘든 건 다들 알아주는데, 정작 부모가 힘든 건 아무도 잘 알아주지 않죠. 부모라는 자리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 내려오신 어머님은, 하루의 어느 틈을 겨우 쪼개어 아이를 위해 무언가 알아보려는 분입니다. 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머님 자신을 위한 위로이기 이전에, 아이를 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는 잘하고 있다'는 그 작은 확신, 그 자존감이 있어야 엄마는 아이에게 편안한 에너지를 건넬 수 있습니다. 그런 공기 속에서 아이는 오히려 더 해보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엄마가 스스로를 자꾸 깎아내리면,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아이도 함께 숨이 막힙니다.
그래서 정보는 무기가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알아 우리 아이를 한 걸음 앞세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어머님을 자책에서 꺼내주는 도구입니다. 흐름과 기준을 알면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자책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으면 비로소 아이를 믿고 기다릴 여유가 생깁니다.
그 여유가, 결국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오늘도 애쓰고 계신 어머님께, 잘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 기준, 이제 여기서 천천히 같이 세워 가시죠.
서보현 코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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